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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_몽파르나스의 전설

- By CFT 인턴 김서영

Jul 06. 2015
몽파르나스의 전설이 된 화가, 모딜리아니
전 세계 40여 공공미술관과 개인소장 진품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은 아시아 최대 규모 국내 최초 모딜리아니 회고전

1917년 프랑스 파리를 떠들썩하게 했던 누드화의 화가로서 아방가르드 미술의 중심지였던 파리 몽파르나스의 전설로 기록된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지닌 비운의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예술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전시


모 딜 리 아 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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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 of Montparnasse



* 전시 기간: 2015.06.26. ~ 2015.10.04.

* 전시 장소: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20세기 아방가르드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에콜 드 파리(ECOLE DE PARIS)의 대표 화가이자, 35세의 짧은 생을 통해 파리 몽파르나스의 전설이 된 이탈리아 태생의 화가이다. 한 편의 드라마 같았던 그의 삶과 예술은 보편적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내면세계에 자리한 심오함을 탐구하기 위한 방식으로서 인물화라는 일관된 주제 속에 집약되어있다.


국내 최초의 모딜리아니 회고전으로 마련된 본 전시는 아방가르드 미술의 중심지였던 파리 몽파르나스의 전설로 기록된 비운의 화가 모딜리아니의 예술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전시이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1884 - 1920

AMEDEO MODIGLI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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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리보르노 태생의 파리의 이방인

35년 짧은 생 동안 400점이 채 못 미치는 유화작품만으로 20세기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파리 몽파르나스 전설의 화가



아메데오 모델리아니 Amedeo Modigliani,1919                                              모델리아니 자화상 Self-portrait,1919,65x100cm

 

1884712, 이탈리아 리보르노에서 유대인 가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어렸을 때부터 매우 병약하여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고, 어머니와 이탈리아 전역으로 여행을 다녔다. 여행을 하며 각 곳의 미술관을 방문한 모딜리아니는 예술에 대한 열정을 깨닫고, 그 이후 예술학교를 다니며 미술을 배우게 되었다.


1906년 예술의 중심지인 프랑스 파리로 넘어오면서 모딜리아니는 본격적으로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당시 예술의 중심지 몽파르나스에서 키슬링, 수틴, 피카소 등과 친분을 맺으며 영감을 얻고,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 양식을 발전시켜 나갔다. 1917, 베르트 베이유 갤러리에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인 개인전을 개최하지만, 그의 누드화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철거 명령을 받으며 작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허망하게 놓치고 만다.


결국 1920, 결핵으로 인한 뇌수막염으로 세상을 떠난 후에야 그의 삶과 작품이 대중의 인정을 받게 된다. 모딜리아니 예술의 독창성은 그 어떤 양식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근 현대 미술사에 독자적인 자리매김하며, 오늘날까지 몽파르나스의 전설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전시구성

EXHIBITION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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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의 짧았던 생애 만큼이나 간결하고

응축된 특유의 표현양식을 보다 쉽게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총 여섯 개의 테마로 구성



1 남자의 초상 Portraits of Man

모딜리아니의 인물화는 20세기 초에 파리 문화 예술계 인명사전과도 같다는 말이 있다. 가난해서 평생 후원을 받았던 모딜리아니는 모델을 고용할 돈이 없어 지인, 화상, 후원자, 애인 등을 그렸다. 특히 폴 알렉상드르는 의사이자 근대 미술의 열정적인 애호가로 모딜리아니의 후원자로서 두터운 관계를 유지하였다. 모딜리아니는 한번에 만족할만한 형태를 얻을 때까지 같은 그림을 하루 저녁에 열 번도 다시 그릴 때도 있었는데, 바로 아래 폴 알렉상드르 초상화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폴 알렉상드르의 초상, 1909, 100.5x81.5cm           폴 기욤의 초상, 1915, 74.9x51.5cm                       쉐롱의 초상, 1915, 74.9x51.1cm



2 여인상 기둥 Caryatids

그는 원래 조각가였다. 조각을 통해 인물의 형상을 단순화할 수 있는 법을 배웠고, 단순함에 도달하면서 사물의 진실, 본질을 보여줄 수 있는 법을 터득하였다. 하지만, 워낙에 병약했고 궁핍해서 재료비가 많이 드는 조각은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신 고대 이오니아식 건축에 등장하는 기둥역할의 여성 조각상들을 그림으로 남겼다.


붉은 여인상 기둥(앞면), 1913, 80x58.5cm              여인상 기둥, 1914, 53x43.8cm                               여인상 기둥, 1915, 49x32cm



3 여인의 초상 Portraits of Women

남성을 그릴땐 검정 눈동자가 많이 있었던것과 달리 여성을 그릴땐 푸른 눈을 하고있는 작품을 볼 수 있다. 또한 타원형의 긴 얼굴, 동공이 없는 듯한 하늘빛 눈, 작고 얇은 입술 등의 여성을 나타내는 패턴화된 표현들은 모딜리아니만의 독창성이 보이는 부분이다. 그 중 그의 스타일을 더 확고하게 만들어준 인물인 그의 뮤즈이자 아내 잔느 에뷔테른의 모습도 엿볼수 있다. 마지막 사랑 잔느를 그린 그림에는 아프리카 원시 조각에서 영감을 받은 그의 독특한 화풍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안토니아, 1915, 82x46cm                                      젊은 여인의 초상(루이즈),1915,51.1x37.1cm          잔느 에뷔테른, 1918, 46x29cm                



4 여인의 누드 Nudes

그의 누드는 여체의 절대미, 원초적 아름다움과 숭고미를 보여준다. 강렬한 시선을 발산하는 동공, 밀도있는 색채감, 절제된 표현력, 뚜렷한 윤곽선이 사실적이면서 적나라하게 포현 되어있다. 신화의 스토리도, 풍경도 없애고 오직 여성의 몸에만 집중한 작품은 파격 그 자체이다.

머리를 푼 채 누워 있는 여인의 누드,1917, 60x92.2cm                                         누워 있는 누드(셀린 하워드의 초상), 1918, 65x100cm



5 종이작품 Works on Paper

젊은 남자의 누드, 1915, 45.2x28cm                       여인의 얼굴, 1916, 31.5x23.5cm                           남자의얼굴, 1916, 1.2x26cm



6 모딜리아니와 모이즈 키슬링 Modigliani and Moïse Kisling

모이즈 키슬링이 20세기 초 파리로 모여든 동유럽 출신의 미술가 및 유대인 미술가들과 함께 모여 에콜 드 파리를 결성했다. 이때 키슬링은 모딜리아니를 만나 각별한 우정을 나누었으며 그는 가난하고 병든 모딜리아니를 자신의 아틀리에로 맞이했다. 키슬링은 그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부탁하기도 했다. 이 둘의 화법은 완전히 서로 다르지만, 모딜리아니와 키슬링은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인물화와 정물화 장르의 협업으로 작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액자 속 인물들은 모딜리아니가 그렸고, 정물화는 키슬링의 솜씨이다.

모이즈 키슬링의 아트리에,1918,66x53.5cm                                                     모이즈 키슬링의 초상이 있는 정물, 1918, 74.5x84cm




모딜리아니는 왜 '인물'에 주목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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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될 때 당신의 눈동자를 그릴 것이다.” 라고 말했던 모딜리아니의 일관된 소재는 인물이다.


그는 단순히 모델을 화폭에 그려 넣기 위한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의 교감을 원했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사실이나 허구가 아닌 무의식이다.” 라고 한 그의 말처럼, 작품 속 인물들은 눈동자가 없는 텅 빈 눈으로 아득한 내면의 깊이를 담아낸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의 결과물로서 그의 예술이 빛나는 점이다.

    

현존하는 모딜리아니의 유화작품은 400여점이 채 안될 만큼 화가로서 그가 남긴 작품 수는 매우 적다. 본 전시는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소장되어 있는 그의 진품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모딜리아니 예술의 발자취와 의미를 감상하고 되짚어 보는 기회이다.

 

영국의 피츠윌리엄미술관, 맨체스터갤러리, 프랑스 파리시립미술관, 오랑주리미술관, 피카소미술관, 낭시미술관, 그르노블미술관, 예루살렘 이스라엘미술관, 일본 도쿄후지미술관, 오사카시립근대미술관, 미국 톨레도미술관, 스위스 라쇼드퐁미술관, 호주 빅토리아국립미술관, 핀란드 아테네움미술관 등에 산발적으로 소장되어있는 40여 국공립 미술관 소장작품과 일반 관람객들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개인소장 작품까지 감상할 수 있다.

    


▼ 전시장 내부

 


▼ 포토존


▼ 기념품 샵








+출처

http://modigliani.co.kr/#chapter1

http://terms.naver.com/list.nhn?cid=46720&categoryId=46865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2868&contents_id=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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