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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_절망에서 피어난 천재 화가

- By CFT 인턴 최은혁

Jun 16. 2015
■ 프리다 칼로_절망에서 피어난 천재 화가

■ 기구한 삶 가운데에서도 빛을 내었던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프리다 칼로), 1907.7.6~195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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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했던 삶 가운데에서도 빛을 내었던 프리다 칼로

 

 

· 전시 기간   2015. 6. 6.(토) ~ 2015. 9. 4.(금)

· 전시 장소   소마미술관 1~5전시실

· 전시 시간   10:00 ~ 20:00

☞ 전시 시간(마감시간 1시간 전까지 입장 가능)



※ 도슨트 운영시간 :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4시)

 

 

 

(소마미술관 프리다칼로 전시장 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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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 전시실 : 비둘기와 코끼리 (연표, 사진, 영상)

칼로와 리베라, 비둘기와 코끼리의 결혼 전후 연표, 사진, 영상을 통해 본격적인 관람 전 작품의 이해를 돕는 코너

(출처 : 소마미술관 홈페이지 https://www.somamuseum.org/)

 

 

 

 

 

 

"나의 평생소원은 단 세 가지, 디에고와 함께 사는 것,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 혁명가가 되는 것이다."

-프리다 칼로-

 

 

저 한 문장으로 프리다 칼로를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를 사랑했고, 그림을 사랑했고, 자유를 갈망했던 여인이다. 제 1 전시실에는 그녀의 일대기와 그녀가 사랑한 디에고의 일대기가 전시되어있다. 프리다 칼로는 초현실주의 작가로 분류되지만 그녀는 자신은 상상이 아닌 현실을 그린 것이라며 초현실주의 작가로 지칭받는 것을 꺼려했다. 그렇다면 그녀의 현실은 왜 초현실적이게 되었을까? 그녀에겐 한번의 큰 사고가 있었다. 그 사고로 그녀는 목숨을 간신히 건졌고 그 사고가 가져다 준 고통은 죽기전까지 그녀와 함께였다. 그래서 전시장에서 보았던 그녀의 사진들은 대부분 앉아 있는 사진들 뿐이였다. 그녀가 사랑했던 디에고의 잦은 외도 또한 그녀의 정신을 아프게 하였고 나는 이러한 고통들 속에서 칼로의 현실은 초현실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사진출처 http://elizabeth-cartasydiariosenelsilencio.blogspot.jp/2013/08/frida-kahlo-nicolas-muray.html, https://story.kakao.com/ch/fashionworking/hNYjTouNxZ0, https://kr.pinterest.com/vcg007/all-things-frida-kahlo/)

 

" 내 인생에 두 번의 대형사고가 있었다. 하나는 전차 사고이며 다른 하나는 디에고이다."

- 프리다 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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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 전시실 : 절망에서 피어난 천재 화가

소아마비, 왼쪽 다리 11곳 골절, 오른발 탈골, 왼쪽 어깨 탈골, 요추, 골반, 쇄골, 갈비뼈, 치골 골절, 버스 손잡이 쇠 봉이 허리에서 자궁까지 관통, 일생동안 척추 수술 일곱 번을 포함하여 총 서른 두 번의 수술, 오른쪽 발가락 절단에 이어 무릎 아래 절단, 세 번의 유산. 외형적인 변화와 육신의 고통이 프리다 칼로로 하여금 현실과 초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화판 위의 작은 세계를 만들게 하였고 후대에 사람들이 그 기괴하고 강렬한 유일성에 환호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결코 단순한 절망이 아니다. 교통사고가 내적, 외적인 상흔으로 칼로의 인생 전반을 지배하며 매 순간의 현실로 각인된다. 육체의 뒤틀림과 칼로 저미는 듯한 고통이 내면으로 침잠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과 사물을 바라보게 하는 힘을 칼로에게 주었고, 결과적으로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에너지로 작용하였다.

▶ 제 3 전시실 : 예술과 사랑

프리다 칼로를 절망에서 피어난 화가로 만든 또 하나의 에너지원을 디에고 리베라였다. 육체적 고통에 더하여 리베라의 바람기로 인한 정신적 피폐가 작업에 본격적으로 몰두하게 하였다. 1929년, 당대의 인기 벽화작가 디에고 리베라와의 결혼으로 그로부터 수년간 그의 그늘에서 화려한 멕시코전통 복장을 한 눈에 띄는 외모의 멕시코 여인으로만 각인되었엇다. 리베라가 미국에서 의뢰받은 벽화작업으로 샌프란시스코, 디트로이트, 뉴욕에서의 외지 생활이 길어지면서 향수병과 외로움에 지쳐 멕시코로 돌아왔을 때 리베라의 동생 크리스티나의 불륜에 절망한 칼로는 이후 혁명마 트로츠키, 조각가 노구치와의 사랑, 동성애 등을 거치며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출처 : 소마미술관 홈페이지 https://www.somamuseum.org/)

 

 

 

(프리다 칼로의 작품, 사진 출처 : http://www.fridakahlo.co.kr/wordpress/?page_id=13242#prettyPhoto, http://thearkofgrace.com/2012/06/25/frida-kahlo/)

 

그녀의 그림을 보고있으면 낙태의 아픔과 디에고를 향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녀의 그림에는 유독 아기가 많이 등장하고, 디에고 또한 많이 등장한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디에고 밖에 없던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또한 자신에게 상처만 주었던 디에고를 아기로 표현 하여서 그녀가 디에고를 향한 사랑은 모성애 가까운 사랑이였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 3전시실에는 그녀가 병원에서 디에고와 주고받던 편지도 함께 전시되었는데, 그 내용은 당신을 사랑하는 나를 위해 밥을 굶지 말아달라는 내용이였고 천번의 키스를 담아 이 편지를 보낸다는 내용이였다.

 

 

 

" 매 순간 그는 나의 어린아이이자 갓난아기이며, 순간순간, 매일이 내 존재 그 자체이다."

-프리다 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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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4-1 전시실 : 예술과 혁명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정치적 성향은 한결같이 혁명적이었다. 1910년 멕시코 혁명 이후 멕시코의 정치, 사회, 경제적 혼란은 가중되었고 노동자, 농민 중심의 소요가 끊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1922년에 멕시코 최고 명문인 국립예비학교에 입학한 칼로는 교내 강당에서 프레스코 벽화를 제작 중이던 리베라를 보고 존경하게 된다. 1925년에 일어난 대형 교통사고로 오랜 시간 침대에서 회복기를 갖는 동안 그림을 시작했던 칼로는, 1928년 교육부 청사의 프레스코 벽화작업중이던 리베라에게 사다리에서 내려와 그림을 봐달라고 당돌한 부탁을 하면서 인상적인 만남을 가졌고, 결국 1929년에 그의 부인이 된다. 이후 그와 정치적 노선을 같이 하며 많은 거리 시위에 참가하여 활동가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출처 : 소마미술관 홈페이지 https://www.somamuseum.org/)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 사진 출처 :http://shellmont.com/2013/02/22/atlantas-high-museum-presents-frida-diego/)

 

(프리다 칼로의 거리 시위, 사진 출처 : http://www.photomagazine.ro/tina-modotti-la-kunst-haus-wien/,http://theredlist.com/wiki-2-24-224-268-view-culture-art-fashion-profile-frida-kahlo-diego-rivera.html)

 

 

 

4-1 전시실에는 그녀의 사랑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과 그녀의 정치적 성향이 나타나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를 보면 프리다 칼로가 자유의 여신상을 그린 낙서 세 점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작품의 제목은 자유의 여신상, 원자폭탄, 자유였다. 그녀에게 있어서 자유의 여신상은 자유이기도 원자폭탄이기도 했던것일까? 그녀가 자유의 여신상을 보며 느꼈던 이 이중적인 감정이 담긴 작품 위에는 이러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고통, 기쁨, 죽음은 존재를 위한 과정일 뿐, 이 과정의 혁명적 투쟁이야말로 지성을 향해 열린 문이다."

-프리다 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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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4-2 전시실 : 비바 프리다!

결혼 전에는 심플한 블라우스와 단정한 치마를 즐겨 입었던 칼로는 결혼 후 리베라 취향에 따른 점도 없지 않으나 전략적으로 멕시코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자 전통의상을 입게 된다. 땅에 끌릴 정도로 긴 치마에 하얀 레이스 망토로 얼굴을 둘러싸 꽃처럼 보이게 만드는 테우아나 여인의 전통 의상은 칼로의 자화상에도 등장한다. 골반만 느리게 흔드는 테우아나 여인의 관능적인 춤사위와 협곡마을에서 큰 소리로 흥정을 하며 행상을 하고 거칠 것 없이 자유로운 성생활을 했던 그녀들의 파워풀한 여성성은 리베라의 여성편력에 지친 그녀가 본능적으로 꿈꿨던 세계이기도 하다.

(프리다 칼로가 즐겨 입었던 멕시코 전통 의상)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프리다 칼로-

 

"1954년 7월 13일은 내 생에 있어 가장 비극적인 날이다. 나의 사랑하는 프리다를 영원히 잃었다. 이제서야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일이 프리다를 향한 나의 사랑이었음을 깨달았다."

-디에고 리베라-



 


 

(재)한국컬러앤드패션트랜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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