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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의 미학, Queer Fashion – Bias VS. Liberality

- By CFT 최혜린

Nov 22. 2013
Queer. 접근하기엔 왠지 먼 소재같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다양성이 존중받고 있는 이 사회에서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실로 어마어마 하다. 특히나 창조력이 큰 재산인 패션계에서 이 Queer라는 단어를 무시해버린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대단한 디자이너들의 엄청난 역량을 무시하는 꼴이 되어버릴 수 있다.

On the Verge of Normality
파괴의 미학, Queer Fashion – Bias VS. Liber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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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FT 뉴욕 애널리스트_배상만(rebourn07@aol.com)

 

 

Queer. 접근하기엔 왠지 먼 소재같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다양성이 존중받고 있는 이 사회에서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실로 어마어마 하다. 특히나 창조력이 큰 재산인 패션계에서 이 Queer라는 단어를 무시해버린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대단한 디자이너들의 엄청난 역량을 무시하는 꼴이 되어버릴 수 있다.


Queer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살펴보면 "Odd or Strange(이상하거나 이치에 맞지 않는)", "Deviating from the Expected or Normal(보통의 통념이나 이치와  다른)"등의 단어들로 설명되고 있지만, 최근에는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를 일컬어 흔히 슬랭(Slang)으로도 쓰이는 용어이다. 역사적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서로 통하는 개념과 사고방식에 부딪히는 이념과 이상을 그들이 추구해 왔기 때문이라고 단어의 뜻을 추리할 수 있겠지만, 현재 미국의 10개 주 이상이 Gay Marriage Equality를 법제화하였고, 2013년 6월에는 Defense of Marriage Act(1996년, 미국 연방은 결혼의 정의를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라고 법제화시킴으로 그간 동성결혼의 제도화를 가로막아 수많은 LGBT 그룹의 비난을 받아왔다.) 마저 파괴되면서, Queer라는 단어는 더 이상 의미 그대로의 LGBT Community를 칭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전 세계의 패션계에서 Queer 디자이너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모두가 알다시피 매우 크다. 이제 더 이상 이 사실이 새로운 뉴스거리도 아니거니와(!) 그들의 창조력에 성정체성 자체가 큰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도 이제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떠한 경로에 의해, 어떤 면에서, 어떻게 패션계에 영향을 끼쳤는가를 자세히 알고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필자 역시 패션 교육을 받고 패션계에 몸을 담은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단순하게 '어떤 디자이너가 LGBT 패밀리에 속해있다'는 사실만 알고있을 뿐, 그들의 성정체성에 의해 어떤 창조력이 탄생되었는지 정확하게 알고있지는 못하다.

  

 

A Queer History of Fashion – From the Closet to the Catwalk


이와 관련하여 현재 뉴욕 첼시에 위치한 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의 The Museum at FIT에서는 2013년 9월 13일부터 2014년 1월 4일까지 “A Queer History of Fashion - From the Closet to the Catwalk”라는 주제로 exhibition이 열리고 있다. 게이(Gay) 디자이너들의 업적과 그들이 패션계에 남긴 발자취를 되돌아 보는 이 전시회에 대해 뮤지엄의 큐레이터이자 이번  전시의 디렉터를 맡고 있는 Valerie Steele은 The guardian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전시는 LGBT Community의 중요성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지만 단순하게 -어쩌다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Gay 였다고 하더라- 라는 단순한 생각을 훨씬 뛰어넘어 그들이 패션계의 발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이 전시회가 가지는 위대한 목적"이라고 밝혔다. 또한 The guardian은 전시 리뷰에서도 "하이패션의 디자이너 또는 트렌드세터로서 런웨이(Runway)에서 부터 스트릿까지 Gay People들이 끼친 영향력에 대해 긍정적으로 돌아보는 오마주(Hommage) 성격의 전시회"라고 덧붙였다.

 


Exhibition Features – 그들만의 발자취

 

전시회의 시작은 1700년대 즉, 18세기 영국의 런던 등지에서 세가지 부류의 남성들(Mollies: Crossing dressing을 선호하는 부류 / Macaronis: 댄디하고 스타일리쉬한 남성들 / Man-milliners:  여성 패션업에 종사하는 부류, 남성들이지만 여성들의 옷을 디자인하고 거래함)이 사회로부터 Queer의 이미지로 취급을 받았던 것으로 Gay Fashion의 유래를 말하고 있었다. 이후 빅토리안 시대의 어둡고 센슈얼(Sensual)한 이미지의 패션이 사라진 시대에 등장했던 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반시대적인 패션 및 섹슈얼리티(Sexuality)에 관한 자신의 사상을 훌륭하게 전파하는 것으로 대단위의 Queer Fashion이 도래했음을 암시했다. 그 동안 Oscar Wilde라고 하면 아일랜드 출신의 시인이자 작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가  Queer Fashion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으며 다시금 그에 대한 행적을 되새긴 것이 매우 놀라울 따름이었다.

전시회 자체도 그의 대한 Queer 이미지 구현에 무게를 싣는 듯 보였고, 그의 패션에 대한 열정과 그가 남긴 발자취를 되짚기 위한 연구의 흔적이 여기 저기 보였다. Huffington Post의 Horacio Fabiano 기자는 전시회 참관 리포트에서 Oscar Wilde는 그의 일생을 감옥에서 마감했지만 그의 Queer Fashion에 대한 업적은 훗날 많은 사람들이 그 동안 꽁꽁 숨겨놓았던 그들의 성정체성을 열어 펼칠 수 있는 힘을 제공하였고, 그의 행적은 많은 패션 디자이너들에 의해 캣워크에서 재탄생되었다고 서술했다.

 

  

 
19세기 초반 레즈비언(Lesbian)들의 보이쉬한 룩에 대한 언급을 지나 전시회 중반부에서는 미국 Gay Liberation 역사상 가장 큰 사건으로 불리우는 "Stonewall Riot Era"에 대한 학습으로 전시회를 이어간다. 뉴욕 Greenwich Village에 위치한 Stonewall Inn 이라는 Gay Bar는 그 당시 Gay Community의 메카로 불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들의 문화를 공유 및 향유하였다. 하지만 그 당시 사회적으로 만연했던 호모포비아(Homo-phobia)에 경찰들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쳐 건물을 철거하고 Gay People들을 연행해가는 것에 대해 수많은 Gay Community들이 반발, 대규모의 시위를 벌였다. 전시회는 1969년 6월 28일 이 중요한 시위를 기점삼아, 사건 이전과 이후의 Queer Fashion 변화에 대한 의미를 부여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Queer Fashion은 소수 엘리트(Elite)의 엘레강스함과 함께 언더그라운드의 여장남자들과 같은 하위문화가 공존하는 시대였다면, Stonewall Riot이 일어난 이후에는 Gay Fashion이 좀 더 모던하게 진화되고, 마초 스타일에 과감하고 섹슈얼한 스타일이 선보여졌으며, Lesbian들의 Anti-fashion 경향이 도래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후 1980년대 미국 전역에서 창궐한 AIDS의 여파는 Queer Fashion에 대한 단순한 인식(Awareness)을 넘어 Gay Designer들의 등장 및 활약을  공개적으로 드러나게 하였는데, 이에 대한 성찰로 전시회는 막을 내리는 듯 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나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의 현란한 의상들, 그리고 특히 1997년 동성 연인과의 비극으로 생을 마감한 지아니 베르사체(Gianni Versace)의 가죽 의상들이 특별히 눈에 띄었다. 이와 관련하여 New York Times의 Suzy Menkes는 전시회 참관 기사에 "베르사체의 화려하고 볼드(Bold)한 가죽 의상들은 Body Conscious하고 대담한 성적 노출로, 당시 터부시 되었던 성정체성을 노출하는 의상들에 대한 반감을 현저히 줄였으며 이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큰 업적을 남겼다"고 밝혔다.

 

전시회 참관을 마치며 필자는 Queer Fashion의 기원을 '프랑스 18세기 말 부터 여성들이 남성의 수트(Suit)를 응용한 구조적인 재킷과 통이 큰 바지를 입은 것으로 보는 것에서 부터 지아니 베르사체나 장 폴 고티에 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Gay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큰 의미를 부여받은 것으로 전시회의 의의를 부여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전시회가 Gay Designer들이 발전시킨 가죽 패션이나, Aids Awareness와 같이 전파적 의미가 강한 창조 활동에 대한 의미 부여에 큰 역할을 한 것은 큰 점수를 줄 만 하였지만, 뭔가 아쉬운 구석이 머리 깊숙히 자리잡기 시작했다. 각종 매체들이나 전시회의 큐레이터 Valerie의 인터뷰에서 언급된 "Gay People들이 패션계에 끼친 영향력"에 대해 왜 조금 더 깊이 다가가지 못했을까.

 

그래서, 그간 우리가 흔히들 접해보지 못했던, 하지만 Queer Fashion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여러 “도전자”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1. Drag Queen

 

Drag Queen이라는 단어가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 Wikipedia(위키피디아)의 정의를 살펴보면 "여장을 한 남자"를 일컫는 용어로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의 목적으로 여자의 흉내를 내거나 연기를 하는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단순한 여장 남자를 떠나 “끼”로 단련된 위트있는 연기와 립싱크로 대변되는 뛰어난 연기력이 뒷받침되는 엔터테이너 내지는 아티스트의 한 부류라고 말할 수 있겠다. 대부분이 LGBT People이지만 때로는 Straight(이성애자)인 아티스트들도 있으며, 현재 미국의 많은 레스토랑이나 쇼 관련 산업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미국의 유력 매체인 Huffington post 는 최근 “Why Drag Queens Are Better Role Models Than Disney Princesses”라는 Joy Martin-Malone 기자의 투고에서 현재 미국사회에서 Drag Queen이 가지고 있는 창의성과 파워풀한 자기주장은 디즈니 캐릭터들보다 더 큰 영향력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할 정도로 미국 사회에서 더 이상 아웃사이더(Outsider)가 아닌 dkxltmArtist의 한 부류로 다가가고 있다.

 

 

A. Divine


미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유명한 Drag Queen을 뽑으라고 한다면 바로 전설의  Divine을 예상할 수 있겠다. People 매거진에 의해 Drag Queen of the Century라는 칭송을 받기도 한 그의 본명은 Harris Glenn Milstead이며, 영화, 음악, 연극 및 뮤지컬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1970-80년대 미국전역에 그의 팬을 확보한 전설적인 Performer이다. 70년대 초 John Waters라는 획기적인 독립영화 제작사를 만나, 영화 끝자락에서 견분(!)을 먹는 장면으로 유명한 “Pink Flamingos (1971)”로 시작하여 “Female Trouble (1974)”, “Polyester (1981)” 등에 출연해 캐릭터 강한 여자 역할을 그만의 강한 색채로 소화해냄으로서 대중의 찬사를 이끌어내었다. 이어 80년대에 들어 그는 음악 영역으로도 활동을 넓혀  “I am so beautiful(1984)”, “Walk Like a Man(1985)”와 같은 히트송을 만들어내 전세계 차트에 그의 이름을 올려 놓았다.

 

 

 

그가 전한 패션의 메세지는 단순하다.  People 매거진의 그를 향한 칭송 메세지 “Goddess of Gross, the Punk Elephant, the Big Mad Mama…”, 그리고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드라마 교수이자 “John Waters: Interviews.” 의 저자인 James Egan의 발언 “300 파운드가 넘는 몸무게에  커다랗게 부푼 머리와 굵은 다리를 가진 그녀의 기이한 눈썹”에서 부터 알 수 있듯이 그의 패션은 굉장히 파괴적이며 독단적이다. 영화 Pink Flamingos에서 입고 나온 빨간 Fish Tail 드레스는 영화 상영 이후 그녀를 대표하는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고, 1989년의 디즈니 영화사가 제작한 “The Little Mermaid(인어공주)”에 등장하는 Ursula the Sea-Witch의 모태가 되기도 하였다. 풍만한 가슴과 허리, 그리고 큰 얼굴과 그 얼굴을 감싸는 거대한 헤어 스타일을 디즈니 영화사에서 캐릭터에 차용할 정도로, 컨셉적인 측면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다는 반증을 들 수 있는 사실이다.

 

 

“Encyclopedia of Gay and Lesbian Popular Culture”의 저자 Luca Prono는 그의 저서에 "당시의 많은 Drag Queen들과 다르게 그녀는 -어떻게 하면 가장 더럽고 유치하게 보일까- 하는 주제로 패션을 탐구하였으며, John Waters의 영화를 통해 미국 대중들에게 그녀가 창조해 낸 고유의 이미지(창피하고 유치하고 더럽고 모욕스러운)를 전달함으로써 그녀가 지배했던 음악 및 영화의 영역 뿐 만 아니라 패션의 영역까지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최근 Divine의 일생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I am Divine"가 미국 내에서 개봉하였다. 이 영화의 제작자 Jeffrey Schwartz는 Bedford and Bowery 웹진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녀의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패션으로 인해 그녀가 등장하는 영화의 질을 반감시켰다"는 평가에 대해 "Divine은 그녀가 창조해 낸 스타일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유일무이한 대스타"라며 "그가 추구한 창조적인 패션 스타일이 없었다면 아마 아무도 현재 그녀를 알고 있지 못했을 것" 이라고 답했다.

 

 

B. Rupaul

 

현재 미국의 유명한 LGBT Cable Channel "LOGO"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프로그램 "Rupaul’s Drag Race"의 주인공 Rupaul은 배우이자 가수, 모델 및 사업가로 미국 전역에 널리 알려져 있는 Drag Queen이다. 1990년대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Supermodel (You Better Work)”라는 노래로 미국 대중들에게 널리 이름을 날린 이후, MAC Cosmetics에 발탁된 최초의 Drag Queen Super Model로서 명성을 떨쳤다. 이후 30편이 넘는 영화 및 TV Series에 출연하였고, 5개의 음반을 발매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통해 현존하는 Drag Queen의 대모로서 군림하고 있다.


미국의 Entertainment Weekly는 Best Dressed Reality TV Judge에 "한치의 의심없이 공정한 결과에 만족한다"는 평가와 함께 그녀를 2013년 공식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했다. 이에 대해 Newnownext 웹진의 Dan Avery 기자는 "Rupaul은 현존하는 TV 스타 중 패션 부문에서 가장 독보적인 존재이며 Entertainment Weekly가 이를 공론화하였다"고 평가하였다.

 

 

이처럼 미국의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Rupaul의  패션은 말 그대로 변화무쌍하고 화려하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그녀가 갈아입는 의상은 매 회 평균 3-4벌 정도이며, 그녀가 직접 디자인하고 원단을 구해 직접 제작하는 의상이 상당수를 차지할 정도로 패션에 대한 열정과 투자가 패션 디자이너에 못지 않다고 한다.

 

뉴욕에서 떠오르는 신진 디자이너들 중 한 명인 Jason Wu는 그의 2014 Spring/Summer Collection이 끝난 직후, 그의 쇼에 게스트로 참석한 Ruapul과  인터뷰를 하였다. Jason Wu는 Rapaul의 광팬으로, Rupaul Doll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그를 모델로 한 Barbie Doll 제작 판매에 들어가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Rupaul은 항상 당당하고 세련되며, 언제나 자기 자신을 가장 잘 표출할 줄 아는 패션 스타일이 그녀의 핵심 포인트"라고 칭찬했다. 

 

또한 NPR.org도 그녀에 대해 "지난 20년 동안 Drag Fashion의 선두 주자로서 이를 대중적인 하나의 스타일로 만든 장본인이며, 그녀의 글래머러스하고 높은 굽과 형형색색의 가발 등은 그녀의 스타일을 대중들에게 쉽게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였다"고 설명했다.

 
올해 51세. 그는 아직까지도 새로운 패션을 시도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에 아낌이 없으며, 대중들에게 항상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패션의 원천이라고 주장하며 성의 구분을 없앤 그녀만의 독특한 패션 세계는 많은 대중들에게 재미와 영감을 동시에 가져다 준다.

 

 

 

 

2. Artists/ Performers


Drag Queen 뿐만 아니라 그 외의 분야에서도 Queer Fashion은 언제나 존재해왔으며 늘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이 창작하는 영역에서 출발하는 패션은 대중들이 추구하는 스타일과 다른 독특한 이야기가 존재하며, 항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방향과 다르게 흐르기 때문에 때로는 멸시나 조롱을 받을 때도 있지만, 시대를 앞서는 관점으로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근본적인 영감을 주는 소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들 중 대표적으로 Leigh Bowery나 Tom of Finland를 들 수 있다.

 

 

A. Leigh Bowery

 

Leigh Bowery는 1961년 호주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한 아티스트 이자 Performer이다. Biography.com 에 수록된 그의 일대기를 살펴보면 "1985년 런던에 Taboo라는 디스코 클럽을 오픈하고 런던의 언더그라운드 클러버(Clubber)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그 유명세를 떨쳐 나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디스코 클럽 Taboo는 성의 경계를 허물고 Leigh가 주창한 “Polysexual- 다양한 성”을 추구했던 곳으로 유명했다. 런던과 뉴욕을 오가며 다양한 창작활동을 펼친 그는 공개적으로 동성연애자임을 밝혔지만, 1994년 5월, 오랫동안 사귀어왔던 이성 친구 Nicola Bateman과 결혼식을 올렸다.

 

  

 

 

그가 패션계에 남긴 발자취는 실로 위대하다. 1981년, 그는 “현재의 패션은 모두 진부하다. 0(Zero) 사이즈의 바짝 마른 몸매에 맑은 피부와 파란 눈동자, 그리고 반짝반짝 빛나는 금발을 한 여성, 그리고 근육질 몸매에 잘생긴 외모, 그리고 멋스러운 콧수염과 구레나룻을 가진 남성으로 대변되는 현재의 모든 패션은 형편없다(Stinks!).  패션이란 그 사람만을 위한 개성을 나타내는 데에 큰 역할을 해야하고, 그에 따라 패션에는 아무런 제약과 룰이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추구하는 패션에는 대중들이 보기 원하는 그런 대중적인 컨셉이 절대 없을 것이며, 이는 나를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분명 소수의 동조자가 있다고 믿고 있다.” 라는 말로, 당시 대규모의 패션하우스로 대변되었던 패션계에 쓴소리를 던졌다. 

 

Examiner.com은 그를 기념하는 기사에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런던 및 뉴욕 패션 예술계 역사에 빠뜨릴 수 없는 핫(Hot)한 아티스트라고 조명하면서 현재까지 많은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영감 및 소스를 제공하는 장본인이라고 설명하였다. 구체적으로 Leigh Bowery는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 등의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큰 영감을 제공하였으며, George Alan O'Dowd(보이 조지), The Scissor Sisters, David LaChapelle 등 런던과 뉴욕의 음악 예술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고 소개하였다. 실례로 Leigh Bowery가 즐겨 사용한 Face Mask나 Body Suit등은 몇 십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많은 디자이너들에 의해  재탄생되고 있다.

 

 

1985년 오픈한 그의 Taboo 디스코 텍에는 당시 많은 패션 및 아트 산업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단골로 놀러와 즐겼다. Taboo는 그 당시 획기적으로 출입문 앞에 “Door Whores”를 배치하여 옷을 개성있게 입지 못한 사람들은 클럽에 입장시키지 않았으며, 이에 많은 패션 피플들이 그들의 개성을 마음껏 뽐내며 클럽을 즐길 수 있었다고 한다. 패션계의 대표적인 단골로는 존 갈리아노를 들 수 있으며, 그가 그 당시 Leigh Bowery가 클럽에서 뽐냈던 의상의 영향을 많이 받아 그의 컬렉션에 반영하였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한가지 더 재미있는 것은, 개성으로 똘똘 뭉쳤던 Leigh Bowery의 영감의 원천이 바로 Divine과 John Waters 였다는 것이다. “Leigh Bowery – The life and times of an icon”의 저자인 Sue Tilley는 그녀의 저서에 "Leigh Bowery는 Divine이 출연하고 John Waters가 감독한 영화를 아주 좋아하였으며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의상 및 Divine의 스타일은 Leigh Bowery에게 큰 영감을 가져다 주었다"라고 밝혔다. 
 

 

B. Tom of Finland


1920년 핀란드 태생의 만화 작가 Tom Of Finland(본명은 Touko Laaksonen)는, LGBT 커뮤니티에 빠져서는 안 될 유명한 카툰 아티스트 이다. 1991년 타계하기 전까지 그는 스타일리쉬하고 굉장히 에로틱하며, 페티쉬(Fetish)적인 Gay 성인용 만화를 창작해내는데 온 일생을 바쳤고, 오늘날까지 그의 작품들은 싸구려 성인용 오락물이 아닌 절대적인 아트의 경계로 추앙받고 있다. 그는 40년 넘게 총 3,500건 이상의 작품을 창작하였으며, 그의 모든 작품들은 20세기 말 개성있는 Gay Culture의 탄생에 중요한 영감을 제공하였다. 미국의 유명한 문화역사학자 Joseph W. Slade은 그의 작품을 빗대어 Gay Pornography Image 창출에 지대한 영감을 지닌 위대한 아티스트라고 칭송하였다.

 

 

그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Queer Leather Fashion의 선구자라 할 수 있겠다. 그의 모든 작품들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모두 가죽 패션을 모토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Dispatch 매거진의 기사에 따르면 실제로 그는 2차 세계대전의 유니폼을 모태로 그의 작품을 완성시켰으며, 50년대 이후에 등장하는 Biker Fashion은 그의 만화의 이미지에서 차용된 패션이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60년대 한 수영복 디자인 컴퍼니로부터 디자이너 제의를를 받아 남성 수영복 디자이너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타이트하게 피트되는 가죽 바지에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티셔츠는 그의 오래된 트레이드 마크로서, 현재까지 John Bartlett, Tom Ford, Jean-Paul Gaultier 등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큰 영감을 제공하고 있는 훌륭한 아티스트라고 매거진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2006년 뉴욕의 Museum of Modern Art는 소수의 그의 작품들을 뽑아 뮤지엄의 영구적 작품 전시로 헌정하였으며, 이에 대해 작품을 직접 제공한 The Judith Rothschild Foundation의 Harvey S. Shipley Miller는 "Tom은 20세기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 5명 중에 꼽히는 인물이다"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또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그녀의 작품 중의 하나인 Sex Pistols T-shirts를 "Tom을 위한 헌정의 작품"이라고 직접 밝히기도 하였다.


한편2000년대  중반 뉴욕의 패션 디자이너인 Gary Robinson 과 David Johnson Tom은 작가의 작품들을 연구한 뒤 직접 Tom의 이름을 따서 Tom of Finland라는 Clothing Line을 설립하여 뉴욕 패션 위크에서 쇼를 열기도 하였다. 그들은 Tom의 훌륭한 패션 디자인과, Gay fashion 뿐 아니라 패션 트렌드 전반에 미친 영향력에 감사하기 위해 그를 헌정하는 남성복 라인을 런칭하였다고 그 당시 많은 매체와의 인터뷰에 밝혔다.

이와 같이 패션계에 미치는 Queer Fashion에 대한 영향력은 비단 Fashion Designer들 뿐 만 아니라 모든 아티스트 및 Performer들이 창작해내는 많은 예술 작품들이, 우리가 현재 입고 즐기는 트렌드의 모태라는 사실을 알게될 때 의미가 있다. 앞으로 어떠한 변화로 그들이 우리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변화시킬 지 두고볼 일이다.

 

 

(재)한국컬러앤드패션트랜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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