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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 아르누보와 유토피아 展

- By CFT 문재윤

Aug 01. 2013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열린 아르누보의 아이콘으로 꼽히는 알폰스 무하의 전시. 무하의 초기 작부터 말년 작까지 235점의 방대한 작품들을 통해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이의 예술 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알폰스 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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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누보와 유토피아 展

 

 

 

'예술가는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과 조국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

'The artist must remain faithful to himself and to his national roots.'

- 알폰스 무하 -

 

 

아르누보의 아이콘,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 1860-1939)의 전시가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개최되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전환기 유럽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무하의 포스터, 드로잉, 유화, 장식화를 비롯하여 서적, 사진 등 작품 235점의 방대한 양을 선보인다. 초기 작부터 말년 작까지 무하가 밟아 온 예술적 변천사를 면밀히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다.

 

  

▶ 예술가 알폰스 무하와 그의 친구들(맨 왼쪽 및 가운데 사진: 무하 / 맨 오른쪽 사진: 왼쪽부터 고갱, 무하, 또 다른 친구, 고갱의 여인)

  

▶ 가족을 사랑한 알폰스 무하, 훗날 딸은 복원가가 되어 아버지의 그림을 복원하고, 아들은 문학가가 되어 아버지의 평전을 쓴다.

    

▶ 민족을 사랑한 알폰스 무하, 슬라브 민족의 역사를 담은 <슬라브 서사시(The Slav Epic)>를 작업 중인 무하의 모습   

 

 

알폰스 무하는 어떻게 아르누보의 아이콘이 되었을까

무하는 매혹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이전까지 시도되지 않은 획기적인 구도 및 서체와 엮어 독특한 스타일의 포스터를 만들어내었다. 이는 당시 '벨 에포크(Belle Epoque)' 시기 파리에서 번성하던 새로운 장르의 시각 예술로 자리 잡았다. 'Le style Mucha(무하 스타일)'로 불리는 이 스타일은 파리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미술 애호가의 집을 꾸미는 다양한 디자인과 장식품으로 널리 응용되었다. 무하의 스타일은 새로운 사상과 양식들을 싹틔운 세계적인 미술 사조, 아르누보의 아이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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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누보(Art Nouveau)란 19세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프랑스에서 유행한 건축, 공예, 회화 따위 예술의 새로운 양식이다. 식물적 모티브에 의한 곡선의 장식적 가치를 강조한 독창적인 작품이 많으며, 20세기 건축이나 디자인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네이버 사전 참고).

 

 

1/  하룻밤 사이에 스타가 된 알폰스 무하

인쇄소에서 일하며 넉넉치 않은 생활을 이어가던 평범한 예술가 무하.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날 밤, 모든 동료들이 퇴근하고 없는 인쇄소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당시 프랑스 최고의 여배우였던 사라 베르나르(1844-1923)가 그 다음 날까지 그녀가 출연하는 '지스몽다(Gismonda)' 연극의 포스터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전화였다. 무하는 세로로 긴 포맷에 지스몽다의 분위기를 잘 살린 포스터를 제작하였다. 당시의 포스터는 주로 가로 포맷에 강렬한 색감, 배우를 강조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파격적인 포스터였다. 다음 날 이 포스터를 본 베르나르는 뛸듯이 기뻐했으며, 길거리에 붙은 포스터는 사람들이 다 떼어가 암거래를 할 정도로 큰 히트를 기록했다. 이로써 무하는 일약 스타덤에 오르며 포스터, 광고, 패키지 등 거의 모든 시각 매체에 그의 작품을 내건다.

 

 

▶ 왼쪽부터 '지스몽다(Gismonda)' 포스터, 1894/ '카멜리아(La Dame aux Camelias, 동백꽃 부인)' 포스터, 1896/ '연인들(Les Amants)' 포스터, 1895

 

▶ 왼쪽부터 무하가 작업한 담배, 술, 향수 광고   

  

 

2/  '무하 스타일(Le Style Mucha)'

1890년대에 들어 '포스터'라는 매체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 시각 문화이 중심지를 점령할 만큼 인기 매체로 자리잡았다. 컬러 석판화의 발달과 벨 에포크의 상업 문화 속 광고에 대한 수요 증가 덕에 예술가들은 새로운 예술 형태를 탐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포스터를 활용해 도시의 광고판을 거리의 전시장으로 삼게 되었다. 이때 무하의 사라 베르나르를 위한 첫 번째 포스터, '지스몽다(Gismonda)'는 섬세한 파스텔 톤과 신비스런 비잔틴 효과, 독특한 구성과 구도로 파리 미술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다. 여성의 이미지와 꽃, 자연에서 가져온 모티브뿐만 아니라 숨겨진 예술적 철학 등을 이용하여 그만의 예술적 방식으로 '무하 스타일'을 발전시킨다.   

 

 

▶ 왼쪽 - 사계: 봄, 여름, 가을, 겨울 (1896) / 오른쪽 - 황도12궁: 달력의 장식 패널 (1896)

 

 

3/  국제적 명성을 얻은 알폰스 무하

20세기에 접어들어 '아르누보 양식(Art Nouveau)'과 함께 무하의 명성은 더욱 커져간다. 그의 양식과 그의 이름은 시각 예술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나 다름이 없었다. 그는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의 다양한 전시 및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1904년에는 미국 땅도 밟는다. 무하는 상업 미술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데 큰 몫을 감당한다.

 

  

▶ 왼쪽 - 파리 만국 박람회(1900) / 가운데 - 잔 다르크로 분한 마우드 애덤스(1908) / 오른쪽 - 꽃의 언어: 장식 앨범의 전면 삽화 35번(1900) 

 

 

4/  신비주의자 알폰스 무하 

무하는 영성론(靈性論)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이는 19세기 말에 활동하던 많은 유럽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이 영성론에 영향을 받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무하는 '스웨덴 출신 극작가 아우구스트 스티린드베리(August Strindberg)와 친분을 쌓으며 점차 신비철학에 매료되었고, '신지(theopophical)학' 모임에도 들어가 1898년 '프리메이슨(Freemasons)' 조직의 파리 지부에 가담한다.  

 

 

▶ 왼쪽부터 4개 패널 - 예술: 춤, 회화, 시, 음악(1898) / 맨 오른쪽 - 르 파테(기도문 편지)(1899)

 

 

5/  애국자 알폰스 무하

파리와 미국에서 성공한 무하는 1910년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예술가는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과 조국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무하는 보다 구체적이며 적극적으로 그의 민족에 관한 작품을 준비해간다. 슬라브 민족의 역사를 묘사한 작품을 통해 '모든 슬라브 동포의 정신적인 통합 및 모든 슬라브 국가의 공통된 목표인 정치적 독립을 이루자'는 뜻을 갖고 조국을 위한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남긴다. 그 하나는 프라하 시청사의 시장실에 그린 벽화이고 또 다른 하나는 <슬라브 서사시(The Slav Epic)>이다.

 

 

▶ '슬라브 서사시(The Slav Epic)', 1910-1928

 

 

6/  예술적 철학가 알폰스 무하

1918년 세계 1차 대전의 종식으로 무하의 새로운 조국 체코슬로바키아가 건국된다. 무하의 꿈인 슬라브 민족의 통합이 이뤄져 그의 여생의 작업들은 이보다 확대된 '인류애'를 주제로 펼쳐진다. 특히 인류는 이성, 지혜, 사랑으로 진보와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인 사상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사랑과 믿음을 바탕으로 한 평화주의자로서의 유토피아적인 철학을 반영한 작품들이 대미를 장식한다. 

 

▶ 왼쪽 & 가운데 - 프라하 시 성 비투스 대성당(The St. Vitus Cathedra) 스테인드글라스 / 오른쪽 -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을 위한 사전 디자인 작업

 

 

무하는 인류 평화라는 보편적인 목표를 위해 모든 슬라브 민족이 함께 하기를 기대하였지만 체코슬로바키아는 독립을 이룩한지 채 20년이 되지 않아 독일 나치의 통제를 받게 된다. 1939년 3월 15일에 독일군은 프라하를 침공하였고, 무하는 게슈타포가 체포한 첫 번째 인물들 중 하나에 속했다. 그는 심문을 받은 후 집으로 돌아왔지만 건강 악화로 79세 생일을 열흘 남겨 둔 1939년 7월 14일에 폐렴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장례식에는 독일의 공공집회 및 연설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많은 군중들이 참석하여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고 한다.       

 

 

전시 장소 :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전시 기간 : 2013.07.11 - 2013.09.22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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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ac.or.kr/program/schedule/view.jsp?seq=15536&s_date=20130711

http://www.muchafoundation.org/

http://en.wikipedia.org/wiki/Alphonse_Mucha

http://en.wikipedia.org/wiki/The_Slav_Epic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51&contents_id=32177

 

(재)한국컬러앤드패션트랜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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